강릉의 청동기시대의 유적들은 구릉지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되며 주요한 유적으로는 취락지와 고인돌 유적이다. 전기에 속하는 유적으로는 강릉 교동유적과 방내리유적 등이 있다. 이중에 이른 시기에 속하는 교동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이중구연에 단사선이 들어가 있는 무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공열이 들어가 있는 것도 보인다. 전기의 취락은 구릉에서만 발견되는데 주로 하천변이나 석호 주변의 낮은 구릉에 입지하므로 산지 가까이로 진출하지 않고 바다에 가까운 구릉지대가 주로 점유된다. 영동지방 청동기시대 중기에 속하는 유적의 양상은 전기나 후기에 비해 불분명한 편이며 강릉지방에서 중기에 해당할 만한 유적은 찾기 어렵다. 후기에 속하는 강릉 방동리유적은 사천천 가까이에 위치한 구릉지대에서 발굴된 점토대토기단계의 취락이다. 나지막한 능선들이 연속되는 가운데 세 지점의 구릉 위에서 취락이 확인되었는데 이전 시기의 어느 취락보다 규모가 크다. 원형의 수혈유구들은 저장시설로 기능이 추정되고 있는데 2-3의 주거지와 함께 군을 이루고 있어 세대공동체와 같은 집단의 구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동리 유적에서는 가장 높은 구릉에 이중환호 유구가 발견되어 원시적인 방어시설로 추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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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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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유적 출토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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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내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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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내리 유적 출토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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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 校洞 遺蹟(강릉 교동 유적)
- 유적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교동
- 시기 : 청동기시대
- 조사연도 : 1997~1998년
강릉시 교동유적은 교동택지 개발지역에서 발굴된 B.C. 10~12경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의 집단취락지이다.
강릉시 교동, 유천동 일대의 낮은 구릉지대에서 발견된 주거지 6기는 장(방)형의 수혈 주거지로써 그 중 최대규모인 4호 주거지는 길이 14.5m, 폭 6.2m(89.9㎡, 27평정도), 깊이 28㎝이다. 1호 주거지에서는 벽채, 기둥, 저장구덩이, 작업대 등이 양호한 상태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청동기시대 초기의 가옥구조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한편 주거지에서는 완형토기 10여 점과 다량의 토기편이 출토되었으며, 작업대, 숫돌, 돌도끼, 돌대패, 돌화살촉, 반달돌칼, 방추차,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이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는 단사선문, 거치문 등이 장식된 것과 그러한 장식이 없는 이중구연토기와 홑구연의 심발형 토기, 굽달린 두형토기와 장경소호, 방사선상의 문양이 시문된 가락바퀴 및 장방형 석도 등이 함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두만강유역 동북계통의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강릉 교동 유적은 지금까지 어느 유적에서도 발견한 바 없는 특이한 형태의 유물상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초기의 문화전파와 가옥발달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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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 坊內里 유적(강릉 방내리 유적)
- 유적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방내리
- 시기 : 청동기시대
- 조사연도 : 1990년
방내리 유적은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홍질목을 넘어 표고 35~45m의 낮은 구릉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방내리 주거지는 모두 12동이 확인되었으나 파괴가 심한 편이다. 평면형태는 장방형 또는 방형으로, 대부분 동-서방향을 장축으로 하고 있어 구릉의 등고선 방향과 일치한다. 주거지의 면적은 확인이 가능한 7기의 경우 약 20~50㎡이다. 주거지의 바닥은 모두 풍화암반을 파들어가 평평한 바닥을 마련한 뒤, 그 위에 진흙을 얇게 깔고 다진 것이 확인되었다.
내부시설로는 화덕자리, 기둥구멍, 제습용 홈, 작업대, 저장용 구덩이 등이 발견되었다.
화덕자리는 4호, 7호, 11호 주거지에서 발견되었는데, 4호의 경우는 둘레에 타원형의 진흙띠를 돌린 형태이며, 11호는 둘레에 타원형의 냇돌을 둘렀다.
기둥구멍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인데, 주로 주거지의 외곽선인 벽의 바로 밑에서 확인되었으며, 1호과 3호에서는 장축인 남벽과 북벽의 중앙선상에서 기둥구멍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지붕은 맞배지붕인 것으로 추정된다. 1호 주거지에서는 토기를 바로 세워서 묻은 것과 밑동이 없는 토기를 거꾸로 묻은 것을 한 쌍으로 한 저장시설이 남북 양벽쪽의 두 곳에서 나타났는데 각각 石과 石棒이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홈이 파여져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제습용 시설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가 있다. 토기류는 직립구연의 심발형 공열토기이며 그밖의 구연부편은 모두직립구연의 공열토기편으로 그 형태는 크게 홑구연과 이중구연으로 나누어진다. 석기류는 석부, 돌대패, 반월형석도, 석검, 방추차, 석촉, 환형석부, 석도, 연석, 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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襄陽 池里 遺蹟(양양 지리 유적)
- 유적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지리
- 시기 : 청동기시대
- 조사연도 : 2000년
양양 지리 유적은 고속도로 확장건설공사로 인하여 2000년 강릉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시굴조사한 결과,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구 1기와 고려시대 토광목곽묘 1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능선방향을 따라 길게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평면형태는 서벽과 북·남벽의 일부와 남아있는 주거지의 바닥으로 미루어 보아 말각장방형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남-북 폭 420cm, 동-서 길이 540cm 정도이다. 바닥은 생토층을 평탄하게 고른 후 약 4~5cm 두께로 진흙을 깔은 다음 불에 구워 단단하게 하였다. 또한 벽을 따라서 남벽에서 2개, 북벽과 남벽에서 각각 1개의 기둥으로 추정되는 목탄이 확인 되었는데, 지름은 모두 15cm 정도이며 기둥간의 거리는 1m 정도이다. 주거지 벽에는 횡보로 보이는 목탄이 남아있으며, 판자를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주거지에서는 원형점토대토기 구연부편과 석부, 돌자귀, 석창, 석촉, 반월형석도, 지석, 소석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지리 유적은 강릉 송림리 유적과 함께 영동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원형점토대토기 주거지로 영동지방 청동기시대 후기 문화양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주거지 내에서는 각종 석기 18점이 세트를 이루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후기의 공작상과 생활상 연구에 커다란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